솔티트립(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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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썽태우가 멈춰 섰다. 출발하기 전부터 불안 불안하더니만 결국 말썽을 부린 것이다. 라오스 음악까지 틀어놓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기우는 차량. 깜짝 놀라 길 한쪽에 썽태우를 세우고 사태를 파악해본다. 오른쪽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장비 몇 개를 챙겨 능숙한 솜씨로 수리 모드에 돌입한 현지 친구를 뒤로하고 블루 라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가는 길은 하나,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마을 풍경도 구경해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붉은 흙길이다. 딱딱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만 걷다가 흙길을 걸으니 걸을 때마다 스펀지처럼 푹푹 꺼지는 감촉이 나쁘지만은 않다. 게다가 흙길 중간중간 소박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고, 흙..
2020.12.18 -
동행
라오스 여행은 어색한 동행의 연속이다. 버스를 타든, 미니밴을 타든, 뚝뚝을 타든, 보트를 타든 간에 말이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몇 시간을 함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친한 친구라도 된 것 마냥 수다스러워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4명, 어떤 날은 6명, 출발하는 차량 크기에 따라 어떤 날은 무리가 되기도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지만 온전히 혼자인 시간은 밥을 먹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정도일 뿐이다. 어딜 가던 한데 모아 출발하려는 기사들 때문에 혼자여서 외롭거나 두려워할 일이 없다. 또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라오스의 밤은 언제나 설렌다. – Are you with someone? 2016년 6월 16일
2020.12.17 -
붓다파크
출발하려는 버스를 잡아탄 까닭에 잔돈도 준비를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큰돈은 아니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들의 도움(5만 킵 짜리 지폐가 버스 반 바퀴를 돔)으로 요금을 냈다. 반나절 남짓 붓다파크를 구경하고 비엔티엔으로 돌아가는 길, 출발할 때 현지인들로 가득했던 버스가 돌아갈 때는 나를 포함한 몇몇 여행자들이 전부다. 혼자가 아니어서 천만다행. 빵빵한 에어컨과 적당한 덜컹거림, 땀으로 젖었던 티셔츠가 빠르게 말라간다. 노곤함과 나른함이 한대 엉켜 결국 잠이 들었다. – 비엔티엔 14번 버스에서 2016년 6월 1일
2020.12.17 -
오아시스
머릿속에 분명히 지우개가 있나 보다.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다. 아무튼 반납해야 할 자전거를 깜빡하고 방갈로 앞에 모셔둔 채 날이 밝았다. 뭐~ 자동 연장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미친 듯 맥주를 마신 탓에 체크아웃 시간을 넘긴 채 오후에서야 일어났다. 결국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선풍기가 갑작스레 멈췄다. 정전인가? 방갈로가 점점 더워진다. 샤워를 해봐도, 부채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참다못해 자전거를 끌고 나와 무작정 달렸다.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마다 바람이 불어와 조금씩 시원해진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듯 달리다 찾은 오아시스. 이제야 살 것 같다. – 돈콘 ..
2020.12.17 -
별 볼일 있는 므앙콩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확인하고서도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배가 고파 방을 나왔다. 아침부터 ‘플로어’가 신이 난 모양이다. 이리저리 날뛰더니만 미끌한 나무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재롱을 부린다. 그래도 이 녀석이 있어서 좋다. 요 며칠 음식을 앞에 놓고 나도 모르게 맛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길래. 어제 저녁은 그냥 굶었다. 그래서일까? 특별할 것 없는 바게트와 계란 프라이, 버터가 전부인 아침식사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웠버렸다. 숙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이상하리만큼 맛있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주방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계란 프라이와 스크램블은 오성급 호텔보다 맛이 좋다. 토마토와 양파를 넣고 마지막에 마법의 간장을 넣는다. 젖은 가방을 말리려 수영장 옆에 걸어둔 ..
2020.12.17 -
밤이 아름다운 그 곳
사반나켓,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경유지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겐 라오스 여행의 작은 휴식처 같은 곳이다. 1968년 식 폭스바겐을 만날 수 있는 곳이고, 머리까지 띵하게 만드는 수박 스무디와 달콤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서툴지만 라오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있는 도시다. 현지인들도 이방인에게 미소를 짓고 말은 건넨다. 여타의 여행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작은 기쁨들이다. 사반나켓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나누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흥얼거리며 평온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듯한 모습의 건물들도 어둠이 깔리고 엷은 조명이 들어오면 미처 알지 못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
20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