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38)
-
오아시스
머릿속에 분명히 지우개가 있나 보다.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다. 아무튼 반납해야 할 자전거를 깜빡하고 방갈로 앞에 모셔둔 채 날이 밝았다. 뭐~ 자동 연장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미친 듯 맥주를 마신 탓에 체크아웃 시간을 넘긴 채 오후에서야 일어났다. 결국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선풍기가 갑작스레 멈췄다. 정전인가? 방갈로가 점점 더워진다. 샤워를 해봐도, 부채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참다못해 자전거를 끌고 나와 무작정 달렸다.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마다 바람이 불어와 조금씩 시원해진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듯 달리다 찾은 오아시스. 이제야 살 것 같다. – 돈콘 ..
2020.12.17 -
별 볼일 있는 므앙콩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확인하고서도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배가 고파 방을 나왔다. 아침부터 ‘플로어’가 신이 난 모양이다. 이리저리 날뛰더니만 미끌한 나무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재롱을 부린다. 그래도 이 녀석이 있어서 좋다. 요 며칠 음식을 앞에 놓고 나도 모르게 맛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길래. 어제 저녁은 그냥 굶었다. 그래서일까? 특별할 것 없는 바게트와 계란 프라이, 버터가 전부인 아침식사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웠버렸다. 숙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이상하리만큼 맛있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주방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계란 프라이와 스크램블은 오성급 호텔보다 맛이 좋다. 토마토와 양파를 넣고 마지막에 마법의 간장을 넣는다. 젖은 가방을 말리려 수영장 옆에 걸어둔 ..
2020.12.17 -
밤이 아름다운 그 곳
사반나켓,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경유지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겐 라오스 여행의 작은 휴식처 같은 곳이다. 1968년 식 폭스바겐을 만날 수 있는 곳이고, 머리까지 띵하게 만드는 수박 스무디와 달콤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서툴지만 라오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있는 도시다. 현지인들도 이방인에게 미소를 짓고 말은 건넨다. 여타의 여행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작은 기쁨들이다. 사반나켓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나누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흥얼거리며 평온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듯한 모습의 건물들도 어둠이 깔리고 엷은 조명이 들어오면 미처 알지 못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
2020.12.17 -
바람이 분다
머리 위로 살랑이던 바람의 감촉이 살 끝에 전해진다. 멈춰있던 모든 것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춤이라도 추게 할 모양이다. 남태평양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은 하루 종일 뜨거웠던 몸과 마음을 식혀주기 충분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던 배는 그토록 기다리던 바람을 만나자, 이내 감춰뒀던 닻을 올려 항해를 시작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벗 삼아 그물 해먹에 몸을 기대어 앉아 바람을 마주해본다. 이글거리던 태양은 구름 뒤에 숨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작은 솜털 구름들은 서로서로를 의지해 뭉게구름으로 만개하고 있다. 바다는 바람이라는 친구를 만나 신나게 춤을 추고 순풍을 만난 리프앤디보어호는 전속력으로 항해 중이다. – 남태평양 야사와 군도에서 2016년 2월 10일
2020.12.17 -
잘 지냈어?
나는 더 이상 프렌즈를 보고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과 목소리, 사소한 농담 하나하나를 기억한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또 다른 인생의 친구들. 나는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6명의 친구들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헤어졌고 그렇게 추억이 되어버렸다. 최근 프렌즈 친구들이 다시 모인 사진 한 장이 온라인에 등장했다. 한 명이 빠진 5명이지만 충분히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장난꾸러기 친구들은 어엿한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지난달 라오스에 잠시 다녀왔다. 비엔티안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가 도착한 방비엥. 그곳엔 젊고 아름다웠던 예전의 모습이 담긴 프렌즈가 하루 온종일 방영되고 있다. 어떤 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공부를 하..
2020.12.17 -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주 짧은 휴가가 주어진다면 떠나고 싶은 곳. 진짜로 여행을 하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뭐가 이리 어려울까? 그냥 훌쩍 다녀오면 될 것 같은데 망설여지는 이유는 뭘까? 주저주저하는 사이 아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사진 속 포르투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게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걸 알지만 밤이면 밤마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꿈꾼다. 스스로와의 타협을 통해 적당한 선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2016년 1월 25일
2020.12.17